Hermès Carrés

오래된 까레를 다시 펼치는 나

앨리스 셜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까레 작가들 중 한 명입니다. 이번 시즌에도 새 까레 디자인이 출시되었죠.

Rewildering Natures.

처음 이미지를 봤을 때부터 아, 역시 앨리스 셜리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예전처럼 바로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어요. 기다리고 있던 까레였는데도 말입니다. 아마 가격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이미 충분히 많은 까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요.

무엇보다 이번 그림은 한 폭의 장면처럼 시선이 머무는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구도에 가까웠습니다. 목에 둘렀을 때는 분명 아름답겠지만, 과연 나는 이 까레를 99만원이라는 지금의 가격을 주고 다시 데려오고 싶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한동안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예전에 샀던 앨리스 셜리의 까레를 다시 펼쳐봤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새 시즌의 출시를 앞두고 그냥 문득,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까레를 펼치는 순간, 조금 웃음이 났습니다.

아. 예쁘다. 정말 예쁘구나.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그 느낌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예전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리스 셜리의 그림에는 이상할 만큼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 잎과 꽃, 작은 생명들이 화면 안에 가득 들어 있는데도 복잡하다는 느낌보다는 하나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까이 보면 작은 이야기가 있고, 조금 멀리 떨어져 보면 그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아마 내가 그녀의 까레를 좋아했던 이유도 그런 것이었겠지요.

단순히 목에 두르는 스카프라기보다 가끔은 펼쳐놓고 바라보고 싶은 그림. 서랍 속에 오래 들어 있다가도 다시 꺼내는 순간 처음 좋아했던 마음을 슬쩍 되돌려주는 것.

새로운 Rewildering Natures를 살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바로 데려오지는 않게 되었으니까요. 그 대신 오래된 까레 한 장을 다시 펼쳐보면서 한 가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앨리스 셜리의 세계를 참 좋아한다는 것.

어쩌면 새것을 기다리는 일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것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 요즘의 나에게는 조금 더 즐거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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