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ENTS

이른 아침 꽃시장이 가져온 봄

A morning at the flower market, and suddenly the house feels like spring.

집 가까이에 큰 꽃시장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정서적 풍요를 준다.
이른 아침 꽃시장에 가면 아직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의 활기가 있다. 막 도착한 싱싱한 꽃들과 그 꽃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시장은 이미 분주하다. 상인들의 손길은 바쁘고, 꽃을 고르는 사람들의 눈빛은 유난히 진지하다.

나는 보통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꽃시장을 찾는다.
이 시간대는 꽃집을 운영하는 상인들이 대부분의 구매를 마치고 서서히 시장을 떠나는 시간이다. 한창 분주했던 새벽의 기운이 조금씩 가라앉고, 시장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분위기가 된다. 그래서 상업적인 구매자가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가장 좋은 시간이다. 남아 있는 꽃들은 여전히 싱싱하지만 가격은 훨씬 여유로워진다. 덕분에 천천히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꽃을 고를 수 있다.

최근 거실 벽의 까레를 봄맞이로 교체한 뒤, 공간에 조금 더 짙은 봄의 기운을 들이고 싶었다.
요즘의 봄은 마치 찰나처럼 지나가는 계절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집 안에서만큼은 가족 모두가 최대한 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른 아침, 딸과 함께 꽃시장으로 향했다. 아직 바람이 차가워 초봄이라기보다는 늦겨울에 가까운 날씨였다. 생각보다 두툼하게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딸과 함께 꽃시장에 간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시장 안에는 꽃망울을 아직 채 터뜨리지 않은 꽃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여러 가게를 천천히 둘러보며 집에 어울릴 꽃을 함께 골랐다. 꽃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색의 조합과 꽃의 형태, 그리고 집 안의 분위기까지 모두 함께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딸은 젊은이답게 나보다 색에 훨씬 민감했다. 비슷해 보이는 색 사이의 미묘한 차이도 쉽게 지나치지 않았다. 어떤 꽃을 함께 두면 색의 균형이 좋아질지, 어떤 조합이 너무 강하거나 흐릿해질지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고심 끝에 우리가 선택한 꽃은…

  • 핑크 레넌큘러스
  • 노란 튤립
  • 양귀비
  • 크림색 버터플라워
  • 노란 프리지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케바나 화병을 비롯해 집에 있는 다양한 화병들을 하나씩 꺼내어 꽃을 나누어 꽂았다. 꽃을 정리하고 물을 채우는 동안 집 안에는 서서히 색이 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거실과 식탁, 그리고 창가 곳곳에 꽃이 놓이자 집 안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막 물을 빨아올리기 시작한 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싱그러워졌고, 공간 전체에 봄의 기운이 퍼졌다.

그 순간 문득 봄을 노래한 시인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았다.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계절이지만, 꽃 한 다발만으로도 집 안에는 이렇게 분명한 봄이 찾아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우리 집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꽃시장에서는 아직 단단히 닫혀 있던 봉오리들이 물을 한껏 올리며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서로 앞다투듯 꽃을 터뜨린 덕분에 집 안 곳곳이 어느새 꽃으로 가득해졌다. 처음 화병에 꽂아 두었을 때보다 색은 더 선명해졌고, 공간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창가와 식탁, 거실의 작은 선반까지, 집 안의 여러 자리가 작은 정원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이 조금만 더 오래 머물러 주면 좋겠다고.

그럴 만큼 집 안에는 봄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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