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FT

Workbench Diary. 버킨을 만드는 시간

버킨백 하나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가죽을 이어 붙이는 일이 아니다.
시간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일이고,
조급함을 조금씩 덜어내는 일이며,
손끝의 감각으로 마음을 다듬어 가는 과정에 가깝다.

종종 H사의 장인들이라면
버킨백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마 그들에게도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의 경험이 있다 해도
가죽은 늘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고,
손은 언제나 같은 긴장감으로 첫 바늘을 들어야 하니까.

내게도 가죽공예는
수많은 취미 가운데 가장 조용한 취미다.
가죽을 만지는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호흡이 느려지고,
마음도 그 속도를 따라간다.
날카로운 칼과 송곳, 무거운 망치와 같은
위험한 도구를 사용하지만,
정작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내 마음이다.

서두르면 안 되고, 욕심을 내서도 안 된다.
가죽에 한 번 난 흠집은 되돌릴 수 없고,
망치를 한 번 잘못 내리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한 땀의 바느질도, 한 번의 타격도
모두 정확해야 한다.
이 작업은 결국 손기술보다도
마음가짐을 먼저 배우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버킨은 유난히 오랜 시간을 품고 있다.
농담처럼 말하자면,
뱀이 구렁이가 되고도 남았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바쁜 일상 속에서 조금씩 시간을 떼어 내고,
마음이 충분히 고요한 날에만 다시 작업대 앞에 앉았다.

그렇게 하루의 몇 시간,
또 며칠,
또 몇 달이 모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제 대부분의 파츠가 완성되었다.
체감으로는 90% 이상.
남은 것은 하나하나의 조각들을
비로소 하나의 가방으로 이어 붙이는
마지막 조립 과정이다.

이 작업은 내 생업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아무 때나 이어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바쁜 하루를 겨우 비집고 들어가는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마음과 손끝이 모두 고요해지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작업이다.

가죽은 집중하지 않는 손을 금세 알아차리고,
조립은 한순간의 성급함도 그대로 결과에 남긴다.
그래서 나는 늘 ‘시간이 날 때’가 아니라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 때’
작업대 앞에 앉는다.

언젠가 마지막 땀에서 나온 실을 묶고,
마지막 보호 필름을 떼어내는 순간이 오면
그동안 쌓여 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올 것이다.
‘드디어 끝났다’는 뿌듯함과
‘정말 잘 만들었다’는 애정이,
오랜 시간을 함께 걸어온 친구를 마주한 것처럼 조용히,
그리고 깊게.

그날의 버킨은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내가 천천히 쌓아 올린 시간의 형태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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