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로 근무하던 곳에서 새로운 전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도슨트가 아니라 ‘지킴이’로 전시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선뜻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도슨트로 익숙하게 서 있던 공간에 이번에는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시장을 지키는 사람으로 다시 간다니.
굳이?
이 두 글자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강력한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시는 보고 싶은데. 좋은 전시가 열렸는데 도슨트의 기회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몇 달 동안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고 또 볼 수 있는 시간을 그냥 놓친다고? 생각할수록 그건 더 아까웠습니다.
결국 다시 전시장에 섭니다. 이번에는 마이크도 없고 작품을 설명할 스크립트도 없습니다. 관람객에게 먼저 말을 건넬 일도 거의 없습니다. 대신 작품을 볼 시간이 생겼습니다. 한 번 보고 지나가는 관람객과 달리 같은 작품을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칩니다. 처음에는 전시 전체를 보고, 다음에는 작품 하나를 보고, 어느 날에는 그 작품의 아주 작은 부분만 한참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좋았던 작품과 자꾸 보고 싶은 작품이 꼭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제게 그런 작품은 오묘초 작가의 《아직 녹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끈 작품이라기보다, 지나갈 때마다 한 번 더 보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고, 조금 떨어져서 보고, 다른 작품을 보다가 다시 돌아와 봅니다.


그렇게 반복해서 바라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내는 것보다, 왜 나는 자꾸 이 작품 앞에 멈추는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한 번의 관람이었다면 그 질문까지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도슨트로 작품을 만날 때는 먼저 공부합니다. 작가의 작업을 살피고 작품의 맥락을 이해한 뒤, 그것을 어떤 언어로 관람객에게 전달할지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순서가 반대입니다. 설명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그냥 봅니다.
보고, 지나가고, 다시 보고.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던 ‘지킴이’라는 자리. 그런데 그 자리에 서보니 도슨트일 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만나고 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답을 찾지 않아도 되고, 그저 마음이 가는 작품 앞에 조금 더 오래 머물러도 되는 시간. 생각해보면 제가 좋아했던 것은 ‘도슨트’라는 이름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 가까이에 머물고, 오래 바라보고, 어제 보지 못했던 것을 오늘 다시 발견하는 일.
도슨트가 아닌 날에도 저는 여전히 작품 곁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