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Notes

집이라는 이름의 경계

처음에는 그저 작은 집처럼 보였습니다.
초록빛을 띤 단단한 정육면체 하나.
그런데 이것이 잘게 분쇄된 1만 원권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박혜수의 〈영혼의 집〉입니다.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돈을 모으고, 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갈까요.

열심히 일하고, 사고 싶은 것을 미루고, 때로는 지금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까지 아껴가며 집을 마련합니다. 그렇게 모은 돈이 결국 집이라는 형태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잘게 잘린 지폐로 만들어진 이 작은 정육면체가 어쩐지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집’이라는 말은 참 따뜻한 말입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하루의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가 편히 쉴 수 있다는 것. 서도호의 집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이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겁니다. 집에는 벽과 지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의 시간이 쌓여 있으니까요.

문득 어린 시절의 동네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옆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알 만큼 서로의 생활이 가까웠습니다. 문을 열면 이웃의 일상이 보였고, 집과 집 사이에는 사람의 기척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시절이라고 모든 집이 따뜻하고 안전했던 것은 아니겠지요. 다만 지금처럼 서로의 삶이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집이 점점 더 단단한 경계를 가진 공간이 된 것은.

밖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벽은 때로 누군가를 밖으로 밀어내는 벽이 됩니다. 닫힌 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고, 서로의 생활은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안전과 폐쇄. 보호와 배제.

서로 반대편에 놓인 말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처음부터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편안한 안식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됩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경계가 어느 순간 나와 세상을 갈라놓기도 하고요.

우리는 여전히 집을 꿈꿉니다. 그런데 집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어렵게 마련한 집 안에서도 서로의 온기를 잃어간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요. 집은 점점 더 견고해지고 세련되어 가는데, 그 안에 머물던 사람의 온기는 오히려 희미해지는 것 같아 조금 쓸쓸했습니다.

다시 작품을 바라봅니다. 작고 단단한 정육면체. 수없이 잘린 지폐 조각들이 빈틈없이 모여 하나의 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단단하게 만들어진 집이 정작 무엇을 품고 있는지는, 바깥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집처럼 보였던 작품 앞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전시장을 떠나면서도 자꾸만 그 작은 정육면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평생을 들여 마련하고 지키려는 것은 정말 집일까요.
아니면 그 안에서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온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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